김소희의 질투 어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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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otograph of cherries

원형의 흰 모양이 모여든다. 실은 이 물체의 한 요소가 아니라 그저 빛의 반사다. 그 옆으론 휘어버린 옥수수 전분 이쑤시개 같은 풀 색의 줄기가 붙어 있다. 각각의 색은 같은 듯 다르다. 멀리서 보면 하나로 보이지만, 조금만 거리를 좁히면 다 다른 개체라는 걸 알 수 있다. 용도는 알 수 없다. 과실로 추정되나 인간이 먹었을 때 유해한지 무해한지는 먹어봐야 알 것이다. 큰 이상은 없을 테지만. 이걸 만진다면 손톱 위로 굳어버린 젤네일을 쓰다듬으면 느껴지는 것과 같듯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크기는 엄지와 검지를 모아 오케이 사인을 만들 때 나오는 원형 크기의 반 정도. 한 주먹으로 여섯 개 이상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금방 씻고 나와 털어낸 손처럼 물기가 어려있다. 이걸 세게 눌러 터트리거나 날카로운 물체로 가른다고 했을 때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액체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 그리고 이건 돈으로 살 수 있다. 생각보다 비싸진 않을 것이다.

the oldest photograph in the world

중앙엔 좌측 하단에서 우측 상단으로 이어지는 대각선이 보인다. 선 아래로는 검은 그림자만 남은 걸 봤을 때 그저 지붕일까. 양옆으론 건물과 건물이 보이는 것 같다. 어두운 부분들이 흩어지는 걸 보면 점묘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눈이 닿는 순간 흩어진다. 불 꺼진 방에서 창문으로 비친 달빛으로 옅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더 잘 보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 억지로 노력해선 이어지지 않는다. 평행으로 이어지는 직선들이 화면을 계속해서 가른다. 화면의 깊이 자체가 깊지 않은데, 가장 멀리 보이는 저것은 나무일까. 이 묘사는 다 엉터리다. 이 사진을 통해 나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과거를 경험할 수 있다. 과거의 과거는 현재의 미래와 같을 수도 있다. 그 혹은 그녀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 과거의 흔적과 무늬에 비친 현재와 미래를 보라.

the oldest photograph in which a figure

카페, 극장, 마차와 사람들이 가득했을 법한 광장이다. 길가를 따라 가로등, 나무, 건물이 있다. 빌딩 위로 삼각형이 모여든 모습의 지붕이 보인다. 좌측 하단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신발을 닦고 있는 한 사람만이 흐릿하게 보인다.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일상적이며 소소했던 몸짓이 영원히 남아버린 것이다. 이에 반해 2020년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은 하루 평균 9,500만 개. 스토리 기능이 생긴 이후론 더욱 잦아지며 사진을 찍는 것과 공개하는 것에 대한 허들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의미들이 갈수록 희석되며, 정말로 무의미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the picturesque photograph

비어있는 부분이 없다. 화면을 가로, 세로로 각각 나눠 4개의 면을 만든다고 했을 때 좌상단의 첫 번째 면은 나무와 커튼, 우상단의 두 번째 면은 구름과 바다, 좌하단의 세 번째 면은 커튼과 바다, 우하단의 마지막 면은 바다가 차지하고 있다. 창문을 열어두었다. 바깥쪽으로 바람이 분다. 모든 것이 비친다. 가벼운 천의 커튼이 둥그렇게 말리고, 저 너머의 물가와 나뭇잎이 비친다. 물가 위론 빛과 구름이 비친다. 빛이 작은 얼굴들을 만들어낸다. 나무의 작은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각자의 것들이 겹칠수록 어두워진다. 편안한 듯 불안하다.

the unrealistic photograph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이라는 건 뭘까? 이상과 현실은 종종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이상은 항상 좋게 보이고, 현실은 어딘가 삐끗거린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진짜일까? 침식되어 험하고 좁은 골짜기를 뜻한다는 협곡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 틈 사이엔 고슴도치 같은 침엽수 같은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물이 필요하다. 아래로 갈수록 색이 옅어진다. 가장 아래가 가장 오래된 것일 텐데 바람결에 날아가 버린 걸까. 말라버린 표면은 거칠다.

the graphic photograph

이 이미지는 누군가 직접 찍은 사진일까 만들어낸 그래픽일까 알 수 없다. 곡선으로 이어진 밭이 보인다. 밭과 하늘이 화면을 위아래로 이등분해 나눈다. 저 하늘을 덮는 구름은 모여있으나 무언가 비유할만한 게 떠오르는 형상은 아니다. 비정형적으로 그저 흘러가는 찰나이다. 상대적으로 좌측의 하늘이 비어 보인다. 지우개로 지우다 만 것 같은 구름 두어 점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도 아래도 한 가지 색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으로 퍼져나간다.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는 구획된 듯한 어두운 선이 보인다. 횡으로 종으로 밭을 가로지른다. 전체를 향해 환한 햇빛의 힘이 느껴진다. 날 좋은 여름날의 이른 오후처럼 보인다. 잠시만 누워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 화면을 담는 카메라 혹은 컴퓨터 옆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정말로 그랬을지 안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미국 어느 포도밭의 휴지기에 찍힌 사진이다. 확신할 수 없다.

the oldest photograph in the korea

지붕의 그림자가 벽을 따라 서남쪽으로 45도 정도를 그려낸다. 이외에는 흰 벽이다. 밧줄과 고리들이 보이는 걸로 보아, 항구일까 싶다. 두 남자가 등을 맞댄 듯 앉아 있다. 아는 사이일까? 머리를 동여맨 모습이 비슷하다. 맨발, 가벼워 보이는 옷 차림은 춥지 않은 날씨임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의 표정은 호의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들을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든 반발하려는 것일까도 싶다. 그릉대다 한숨을 내쉬는 걸까. 그들은 포로일지도 모른다.

the oldest color photograph

첫눈에 그를 봤을 땐 어떤 사람일까 알 수 없었다. 보석류의 잘린 면들이 빛에 반사되는 것도 같다. 어떤 질감이길래 저런 형상을 하고 있을 수 있을까. 빛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차츰 약해지며 배경을 가렸다. 보라색과 파란색이 섞인 느낌이 오묘하다. 무지개를 머금었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의 일곱 가지 색 중에선 노란색, 남색, 보라색이 차례로 보인다. 그에게 만년필 두 자루가 한곳에 모여든 듯하다. 고개를 들어 조금은 멀리서 보니 귀가 긴 미키마우스 혹은 토끼 캐릭터의 모습이다. 중앙 아래로 무게감 있는 원형, 좌우로 뻗어나가는 번데기 같은 모양은 가운데를 접었다 편 듯 대칭적이다. 중력에 의해 줄에 건 팬던트가 아래로 쏠린 목걸이의 모습을 가까이 줌 인해서 보고 있다.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본 김소희최지예, 홍소이,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함께합니다.